고유[固有] - 2편: 2025년 노트의 표제를 정하며
노트의 표제를 항상 정하는 것은 매년 블로그를 써오며 항상 첫 번째로 해왔던 일이지만 어느덧 해마다 정리한 그 노트도 몇 권정도 쌓였다보니 신년의 표제를 정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사람이 식견이 넓어지려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걸까. 여러번의 여행 끝에서 어떤 생각에 도달하였다. 2025년 2월 중순, 여행을 다녀온 직후 그 느낌을 살려 표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완성하는데 3주가 걸렸다. 2025년 블로그의 컨셉이 한 해의 절반의 절반이나 지난, 벚꽃 필 즈음에나 정해지는게 영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뭐...어쨌든 꽤 나쁘지 않은 것을 찾아내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쓰다가 마음가는 작문이 되지 않아 버려두고 있던 글이었는데, 그냥 어느날 밤 원인불명(?)의 작문 욕구에서(대부분 그렇지 않나?) 출발한 몇 시간의 여정이 이 글의 완성을 이끌었다. 완성 못할줄 알았는데...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은 글이다.
겨우내 해외 여행을 두 번 다녀왔다. 이전 글 '고유(固有)'에서 소개한 일본이 첫 해외여행이고, 베트남 다낭 시로 두 번째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두 번의 해외여행은 너무나 다른 성격을 지녔다. 한 곳은 아주 고유하고 사적이었지만, 한 곳은 아주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해변도시의 분위기였다. '고유'라는 (이 글 한정, 긍정적인) 프레임의 단어 하에서 두 도시를 비춰본다면 그 차이는 극심하였다. 양 극단에 위치하는 두 도시를 모두 방문하며 고유성의 가치에 대해서 느끼게 되었다. (물론, 고유성이 부족하다고 하여 그 도시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때때로는 그 고유성을 발견하는 조차 지쳐 여행을 떠날 때가 있고,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상실한 도시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얻은 통찰은 나는 그동안 얼마만큼의 고유를 쌓아왔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시간과 고유성은 비례하지만, 그 기울기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적어도 나는, 고유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확히는, 시간을 가로축, 고유성을 세로축으로 하는 그래프의 기울기가 가파른 사람이 되고 싶다.) 뾰족한 재능이나 선호가 있다면 고유성을 빠르게 갖추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만은, 재능은 미미하고 선호는 크지 않다. (아직까지는) 다만 교수를 꿈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만의 전문분야의 존재로 인해 교수는 어떤 직업보다 업(業)에서 고유성을 뽐낼 수 있다.
2025년의 목표는 따라서 '고유성'을 늘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중의 취향'이라는 단어를 지양해야 할 표현이라 생각하기로 하였다.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에 대한 한 식견이 생각난다: 평론가와 대중이 영화를 바라보는게 다른 만큼, 대중 사이에서도 영화를 바라보는게 다르다. 그 단어로 인하여 획일화된 무언가를 따라가야만 할 당위성과 욕구가 발발하는데, 그것은 고유를 실천하는데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홍대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 중 대중의 취향을 따라가는 당위성의 심리와 정반대의 심리로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것을 좋아하는 뾰족한 이유와 내재된 열정 대신, 남들과는 다른 것을 과시하겠다는 약간의 허세가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험담할 생각은 없었는데 (또 매우 싫어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너무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보니 원치않던 속마음이 공개되었다.
결론은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결정할 때 대중성이라는 특성을 아예 배제하고 생각하겠다는 다짐일 것. 대중성을 보지 않아도 된다. 보편적 인기가 높다면 컨텐츠 속에서 그 이유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기가 없더라도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산불처럼 촉발제가 들어가면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컨텐츠도 많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컨텐츠의 요람이 범람하며 그 속에서 내 선호를 찾으면 또한 자연스럽게 취사선택 속 일관성이 드러난다. 나름대로 이전까지 나의 그 '일관성'은 무엇에 있을까를 스스로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별도의 글로 다뤄보겠다. 한 개인의 고유에는 무엇을 선호하는가와 더불어, 선호의 '일관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해 새마음 새뜻으로 블로그를 새단장하고 컨셉을 잡아왔다. 올해 이 블로그의 목표이자 컨셉도 정했다. 나의 고유를 보여줄 수 있는 블로그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좋아해왔던 것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고유성 늘리기'의 일환으로 새롭게 발견한 내가 좋아하게 된 것들 (취미나 문화에 국한하지 않는다. 한 생명체가 될 수도 있고, 작은 습관이나 행위가 될 수도 있고, 학문이 될 수도 있다.)을 소개하려 한다. 지금까지의 글들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쓴거긴 하지만..
그런 컨텐츠들이 꽤 모이면, 이 블로그에 방문한 사람들은 '나'를 마치 내가 일본 도쿄를 탐방했을 때와 같이 느낄 수 있다. 재패니즈 위스키에서 보였던 소름돋는 일관성을 발견할 때 큰 재미를 느꼈다. 이 블로그의 방문자들 중 누군가는 내 선호의 취사선택 속에서 나에 대한 일관성을 느끼고, 사람을 파악하는데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년짜리 프로젝트지만, 깊이가 부족하다면 더 해볼수도 있다. 확실한건 티스토리 요거, 요사이트는 고유를 찾아가는 나와 고유를 발견하는 여러분 사이의 100점짜리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
블로그에는 동어 반복이 많을 것이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걸 찾겠다는 다짐을 무려 몇 문단이나 적었는지. 누군가는 글을 읽으며 지겨움을 느끼기도 할거다. 이 글을 쓰고 있을때쯤 전화로 누군가의 동어 반복을 계속 들은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 사람에게, '너 술 취한 것 같아. 같은 말을 반복해!' 라고 말하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라. '내가 이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 말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래!' 어떻게 알고 감사하게도 내 글, 내 블로그에 딱 맞는 말을 해주었다. 덕분에 한참동안 고민하던 블로그의 마지막 문단을 간결하게 완성했다! 동어 반복은 내 생각의 깊이를 온전히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러면서 계속 여러분을 이해시키려고 계속 강조하다보니 발생하는 것 같다.
글을 완성하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감사하게 영위하며 상실되어 있는 내 고유(固有)를 찾아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